필립스가 걸어온 길, 그리고 삼성전자·LG전자가 배워야 할 교훈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대 기업이라면 누구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국내 대표 기업들도 미래를 낙관만 할 수 없는 분위기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말 잘 나가던 회사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오늘은 한때 ‘유럽의 삼성전자’라 불릴 정도로 가전부터 반도체 분야까지 석권했던 필립스(Philips)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한 기업의 흥망성쇠가 주는 교훈을 되짚으면서, 국내 IT·전자 기업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미래 전략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 들어가며
- 한때 ‘유럽의 삼성전자’였던 필립스의 위상
- 파죽지세 성장 비결, 혁신과 표준화의 두 축
- 무너진 혁신 모멘텀, 왜 삐걱대기 시작했나
- 핵심 기술을 놓치다, 반도체·MP3·새로운 시장
- 헬스케어로의 전환과 남은 과제
- 삼성전자·LG전자가 얻을 수 있는 교훈
- 마무리
한때 ‘유럽의 삼성전자’였던 필립스의 위상
필립스는 1890년대 후반 전구 공장으로 출발했습니다. 당시에는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 상용화를 성공시키고, 전기 조명이 각광받던 시기였죠. 유럽이라는 지역적 이점을 활용해 전구 사업을 빠르게 확장한 필립스는 점차 라디오와 텔레비전, 음향기기 등 각종 전자제품으로도 영역을 넓혔습니다.
특히 카세트테이프와 CD(콤팩트디스크) 개발에 크게 기여하면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는데요. 소니와 함께 차세대 미디어 표준을 만들어낼 정도로 업계에서 영향력이 컸습니다. 더 나아가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에서도 한 축을 담당하며, 나중에 독립한 ASML(현재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회사) 역시 필립스 그룹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파죽지세 성장 비결, 혁신과 표준화의 두 축
필립스가 20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운 기술”과 “시장 표준화”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신기술 선점
- 라디오, 텔레비전, 카세트테이프, CD 등 각종 전자·미디어 기기에 꾸준히 기술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 사내 연구소(NatLab)를 통해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조성했고, 이는 세계 곳곳의 인재들을 끌어모았습니다.
표준화 전략
- 카세트테이프부터 CD, DVD, 블루레이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국제 표준을 주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죠.
- 한 번 표준을 장악하면 라이선스를 통해 막대한 로열티를 얻을 수 있었고,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무너진 혁신 모멘텀, 왜 삐걱대기 시작했나
하지만 1970~80년대 이후로 필립스는 강력했던 혁신 동력을 서서히 잃게 됩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실무와 연구개발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각 부서 간 이기주의와 중복투자 등이 심화되었습니다.
- 의사결정 구조 비효율: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뒤, 핵심 결정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게 됨.
- 엔지니어 집단의 고립: 연구원들이 시장 니즈보다 기술 자체에만 몰두했고, 상업화 타이밍을 놓치는 사례가 잦아졌습니다.
- 표준화 집착: 새로운 시장 니즈보다는 "우리만의 표준"에만 집착하다가, 베타맥스·VHS 전쟁이나 MP3 시대 흐름 등에 뒤처지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핵심 기술을 놓치다, 반도체·MP3·새로운 시장
필립스는 본래 ASML의 모태가 될 정도로 반도체 장비 기술에서 강점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내부 경직성으로 인해 리소그래피 관련 사업을 충분히 키워내지 못했고, 결국 분리·매각해버리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 ASML 독립: 성공 가능성이 크던 반도체 장비 부문을 떼어내며, 향후 엄청난 시가총액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림.
- MP3 시대 놓침: 디지털 음악 재생기가 떠오를 때, 필립스 내부에서는 이미 제안이 있었지만 '박사학위가 없다'며 아이디어를 묵살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 결과,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되었죠.
그리고 필립스의 휴대폰 사업이나 컴퓨터 사업 역시 경쟁사 대비 늦거나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빠르게 철수했습니다. 시장 점유율 3%를 확보했음에도, 기대 이하의 성과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접어버리는 단기 시각이 문제였습니다.
헬스케어로의 전환과 남은 과제
결국 필립스는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가전·음향·조명 부문을 대폭 매각하거나 분사해 브랜드 라이선스 형태만 남기고, 현재는 주로 의료기기·헬스케어 쪽으로 사업을 전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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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그니파이(Signify): 필립스 조명 사업부에서 분사한 뒤, 더 이상 ‘필립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 의료기기 시장에서의 도전: 노령화가 진행된 유럽 인구를 대상으로 의료기기·이미징·헬스케어 솔루션 등을 집중 육성하고 있지만, AI 기반 혁신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치열한 경쟁이 예고됩니다.
- 면도기 사업: 전기 면도기 사업 부분에서 만큼은 필립스가 업계 선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LG전자가 얻을 수 있는 교훈
필립스의 사례는 단순히 “한물간 외국 기업”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잠재적 사례로, 국내 전자기업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시장 니즈 vs. 기술 오만
- 아무리 뛰어난 연구진을 보유해도, 시장이 원하는 방향과 타이밍을 놓치면 기술은 빛을 발하기 어렵습니다.
- AI 반도체처럼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하며, 고객 관점의 상품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의사결정의 스피드
- 거대 조직이 되고 나면 경직된 구조가 혁신을 방해합니다.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신속하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합니다.
- 반도체 사업에서 하이닉스·TSMC·엔비디아 등이 치고 나가는 것은 끊임없이 빠른 의사결정과 협업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단기 손실이라도 미래 가치가 크다면 잡아라
- 필립스가 ASML을 손에서 놓아버린 건 장기적으로 엄청난 기회를 놓친 셈입니다.
- 삼성전자나 LG전자도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하게 포기하기보다는,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이어가야 합니다.
브랜드 이름만 남은 기업이 되지 말라
- 필립스는 과거의 브랜드 파워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느낌이 짙습니다.
- 제품 혁신이 뒤따르지 않으면 “브랜드 라이선스”만 남고, 소비자들 기억에서도 점차 잊힐 수 있습니다.
마무리
“과거의 영광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는 진리는 필립스의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거대한 글로벌 기업도 실수와 조직적 문제로 인해 급격히 위상이 흔들리는 일이 벌어지죠.
최근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경쟁에 힘입어 메모리 시장 회복을 노리고 있지만,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이미 전쟁터와 같습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파운드리 사업 등 미래의 열쇠가 될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더 과감하고도 전략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한 표준화가 아니라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교훈이 여기에 있습니다. 필립스가 그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해 몰락을 맞이했던 만큼, 우리나라 전자·IT 기업들은 이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정리필립스: 전구부터 라디오, 카세트테이프, CD, 반도체 장비까지 유럽을 대표하던 혁신기업.추락 원인: 경직된 조직 문화, 시장보다 기술 자체에 몰두, 표준화 집착, 늦은 의사결정.결과: 핵심 사업(ASML 등) 분사·매각, 이제 의료기기 중심 기업으로 전환.교훈: 기업 규모가 클수록 시장 니즈·소통·미래 투자 등을 균형 있게 운영해야 하며,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R&D 역량을 지키는 것이 중요.
“돈이 목적이면 돈도 잃는다. 혁신은 결과일 뿐, 그 자체가 목표여야 한다.”
이 말이 바로 필립스의 사례를 통해 되새겨야 할 핵심 문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